우리나라 최초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한강 작가는 스타다. 책보다는 작가 이름이 먼저 소개되는 경우가 많다. 책을 읽어보지 않은 사람이라도 말 하나하나에 국민의 관심이 집중된다. '작별하지 않는다'와 '채식주의자', '희랍어 시간' 등 작품에서도 문체와 소재, 구성보다는 '한강 작품'이라는 데에 이목이 쏠린다.
그리고 박정희 전두환 정권시절 민주화운동을 하다가 죽어간 이들에 대한 진상규명과 명예회복투쟁도 벌어졌다. 이때 인혁당 사형수의 부인들도 남편들의 명예회복을 위해 나섰다. 그런데 '간첩의 부인들'이 이곳에 왜 왔냐며 냉대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이처럼 메카시즘이 6월항쟁 이후에도 우리사회 전반을 지배하고 있었다.
한 작가의 신작 '빛과 실'도 비슷하다. 출간 즉시 대형 서점의 베스트셀러 부문을 휩쓸었지만 후기는 내용보다는 한강 작가에 집중돼 있는 느낌이다. 150쪽 분량의 책에 한 작가의 인생과 생명, 세계에 대한 고찰이 꾹꾹 눌러담겨 있는 것을 감안하면 아쉽다. 산문과 시라는 분량 짧은 내용이지만 정원을 돌보면서 느낀 마음과 작품에 관한 생각은 장편소설과 견줘도 부족함 없다.
"조언할 생각이 없다. 박씨는 당장 진화위 위원장에서 사퇴해야 한다. 박씨는 대통령에서 탄핵당한 윤씨가 헌법재판관 친인척이라 탄핵을 모면해보고자 임명한 것이다. 박씨는 박정희 전두환을 칭송하는 사람인데 그 정권에서 자행된 인권탄압사건을 조사하는 진화위 위원장으로 임명된 자체가 부당한 것이다. 이제 윤씨도 탄핵된 마당에 뭘 더 기대하나. 조언을 하라면 바로 사퇴하라는 말밖에 없다."
누구나 갖고 있는 창작욕을 건드리는 부분은 특히 인상적이다. 한 작가는 소설이 완성되었지만 끝없이 창작을 멈추지 않으려고 한다. 갖은 압박과 슬픔, 부담에서 해방됐지만 다시 연결되기 위해 소설을 쓰겠다는 대목은 누구에게나 깊은 울림을 남긴다. 끊임없이 말하고 쓰고 읽는 우리 역시 한번쯤은 모든 것을 멈추고 싶다가도 다시금 활자와 영상으로 돌아간 적이 없었을까.
한 작가의 정원 이야기 역시 정원을 다스린 경험이 없더라도 재미있다. 청단풍과 불두화와 옥잠화, 맥문동을 심고 싹틔우며 꽃피우고 눈내리는 계절을 바라보는 모습은 우리 인생과 닮아 있기 때문이다. 라일락 향이 그득한 대문을 들어서면 키보다 높게 자란 식물과 초록으로 물든 벽이 반겨준다는 대목은 독자에 대한 한 작가의 초대다.
그간 발표되지 않았던 시도 뜻깊다. '더 살아낸 뒤'라는 제목은 일견 뜬금없어 보이지만 읽는 사람에게도 '나는 어떻게 살아내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한 작가에게는 충분히 살아내는 방법이 글짓기다. 글로 많은 사람을 만나고 인생을 꽉 껴안아 봤다는 대목은 담백하다. 독자들은 충분히 살아내기 위해 어떤 길을 걸어야 할까.
한 작가 특유의 난해하고 대중적이지 않은 문체는 이 책에서도 여전하다. 분량이 짧으면서도 많은 이야기가 한 곳에 묶여 있어 깊은 생각 없이는 자칫 이야기에서 길을 잃어버리기 쉽다. 마치 꿈을 꾸듯 떠오르는 생각을 동시에 나열해 놓아 혼란스럽거나 갈피를 잡기 손수건 스카프 어려울 수도 있다.
한강 작가는 1993년 시 '서울의 겨울'로 등단해 '여수의 사랑' '내 여자의 열매' '소년이 온다' 등 작품으로 세계적 명성을 얻었다. 지난해 한국 최초 노벨문학상을 수상했으며, 메디치외국문학상, 인터내셔널 부커상 등을 받았다. '채식주의자'는 노벨상 수상 이전에도 100만부 이상 넘게 팔리며 밀리언셀러 반열에 올랐다.